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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장에서 주식을 던진 날이 하필 바닥이었다는 경험, 한 번쯤 있으시지 않습니까?
저도 올해 시장이 크게 흔들리던 날 계좌를 들여다보면서 이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을 돌아보면 제 성격이 약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버틸 수 없는 구조로 투자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투자 멘탈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는 말, 정말 그럴까요?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하면 주식에서 진다
주가가 급락하는 날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떠올려 보십시오.
저는 솔직히 종목 게시판부터 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불안해하고 있는지, 혹시 저만 모르는 악재가 있는 건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이 반응은 사실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이 생존하면서 만들어진 본능입니다.
밀림에서 옆 사람이 갑자기 뛰기 시작하면 이유를 따지기 전에 같이 뛰어야 살아남았습니다.
확인하는 3초 사이에 사자가 도착하니까요. 이유를 묻지 않고 반응하는 쪽의 유전자만 살아남아서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 겁니다.
문제는 주식시장이 밀림과 정반대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다들 뛰어나갈 때가 오히려 들어갈 때일 수 있는 구조입니다.
군집행동(Herding Behavior)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개인이 독립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집단의 행동을 따라가는 심리적 현상을 말하는데,
금융시장에서는 이 현상이 가격을 실제 가치에서 크게 벗어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폭락장에서 가격이 기업 실체보다 훨씬 더 빠지는 것도 이 군집행동의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머리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어도, 막상 계좌 숫자가 빨갛게 물드는 순간에는 본능이 먼저 반응하더군요.
행동재무학에서 설명하는 군집행동은 단순히 겁쟁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장 참여자 대부분이 같은 본능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 현상입니다.
그러니 폭락장에서 흔들렸다고 해서 스스로를 탓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그 본능이 이 판에서는 손실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진짜 문제는 멘탈이 아니라 투자환경이었다
그렇다면 폭락장에서 팔아야만 했던 사람들은 정말 겁이 많아서 그랬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팔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었던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 신용 거래로 주식을 산 사람. 담보 유지 비율, 즉 내가 맡긴 담보가 빌린 금액 대비 일정 비율(보통 140%)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조건인데, 이 선 아래로 주가가 빠지면 증권사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로 매도하는 반대매매가 발동됩니다. 파는 게 아니라 팔리는 겁니다.
- 쓸 날짜가 정해진 돈으로 투자한 사람. 전세 만기나 결혼 자금처럼 특정 시점에 반드시 출금해야 하는 돈이 계좌에 섞여 있다면, 시장이 회복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더 무서운 건 주가가 반 토막이 나면 같은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두 배를 팔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 무엇을 샀는지 모르는 사람. 확인할 수 있는 게 가격뿐이라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 자체가 전부입니다. 10% 하락은 반신반의하다가 40% 하락에 이르면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기업은 멀쩡한데 가격만 빠진 상황에서도 팔게 되는 가장 흔한 경우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여유 자금과 필수 자금이 한 계좌에 섞여 있으면 하락장에서 냉정하게 생각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쓸 돈이 묶여 있다는 불안감이 판단력 자체를 흐리게 만들더군요.
이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대형 쇼핑몰 기업 제네럴 그로스 프로퍼티스(General Growth Properties) 주가는 67달러에서 24센트까지 추락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이 회사의 몰 입주율은 93.8%에서 92.5%로 1.3%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오히려 24억 7천만 달러에서 25억 8천만 달러로 늘었습니다. 주가가 실적을 따라간 게 아니었습니다. 공포가 가격을 만든 겁니다.
굳은살은 강심장이 아니라 반복의 결과다
폭락장을 버티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애초에 배짱이 두둑한 거야"라고 생각하신 적 있으십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과정을 들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처음 큰 하락을 경험하면 하루 종일 계좌만 들여다봅니다.
두 번째는 아침저녁으로 확인하고, 세 번째쯤 되면 한 번 보고 덮을 수 있게 됩니다.
바뀐 건 시장이 아니라 내 쪽이고, 그게 쌓이는 게 굳은살입니다.
타고나는 성질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이 굳은살이 꼭 직접 피를 봐야만 생기는 건 아닙니다.
행동주의 투자자 빌 애크먼(Bill Ackman)은 투자를 막 시작할 때
워런 버핏이 1950년대에 투자자들에게 보냈던 편지를 구해서 읽었다고 합니다.
버핏이 저지른 실수까지 함께 따라가면서 수십 년의 시장 흐름을 간접 체험한 겁니다.
역사 속 폭락장을 기록으로 먼저 겪어두는 것, 이게 생각보다 훨씬 값진 준비입니다.
애크먼은 2020년 3월 코로나로 시장이 무너지던 때 방송에 나와 지옥이 온다고 경고하면서 동시에
힐튼(Hilton), 스타벅스(Starbucks), 레스토랑 브랜즈(Restaurant Brands International) 같은 주식을 사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사람이 모여야 돈을 버는 회사들, 즉 코로나로 가장 많이 맞은 업종만 골라서 샀습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이게 진짜 위험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과잉 반응하는 건가?" 무섭지 않아서 산 게 아닙니다. 질문이 달랐던 겁니다.
버핏의 주주 서한 아카이브처럼 과거 투자자들이 남긴 기록을 읽는 것은 직접 수업료를 내지 않고 시장 경험치를 쌓을 수 있는 드문 방법 중 하나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책 읽는 게 굳은살 훈련이 된다는 이야기가 처음엔 추상적으로 들렸는데,
실제로 하락장을 겪어보고 나서야 그 의미가 다르게 들리더군요.
오늘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것들
그렇다면 폭락장이 오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제 경험상 이건 시장이 평온할 때 해두지 않으면 정작 급락하는 날에는 할 시간도 마음도 없습니다.
먼저 신용 거래나 미수 거래 비중을 확인하십시오.
신용 거래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방식입니다.
빌린 돈이 계좌에 있으면 하락장에서 내가 선택해서 파는 게 아니라 팔리는 상황이 됩니다.
올해 이틀 연속 서킷 브레이커가 걸렸던 날, 담보 비율이 기준 아래로 떨어진 계좌들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정리됐습니다.
다음으로 3년 안에 써야 할 돈이 계좌에 섞여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전세금, 등록금, 결혼 자금은 주가가 회복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이 돈이 섞여 있으면 아무리 좋은 기업을 샀어도 반등 전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들고 있는 종목의 공시를 한 번이라도 열어보셨습니까?
재무재표(Financial Statements)란 기업의 매출, 이익, 부채 등 경영 상태를 숫자로 정리한 공식 보고서입니다.
매출이 늘고 있는지, 빚이 어느 수준인지 이 두 가지만 알아도 가격이 빠지는 날에 확인할 곳이 하나 더 생깁니다.
애크먼이 말한 "But I can read"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남들이 안 열어본 공시를 열어봤다는 뜻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해보니 처음엔 낯설지만, 두세 번 보다 보면 어디를 봐야 하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투자 멘탈은 성격이 아니라 상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팔아야만 하는 구조를 만들어 두지 않는 것, 내가 뭘 들고 있는지 아는 것, 이 두 가지가 갖춰지면 폭락장에서 선택지가 하나 늘어납니다.
무조건 참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 기다리고 어떤 상황에서 물러나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제가 지금 만들어 가려고 하는 기준입니다.
다음 하락장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그때 내가 어떤 상태일지는 지금 결정됩니다.
이 글은 개인의 경험과 의견을 바탕으로 한 정보 공유이며, 특정 종목이나 투자 전략에 대한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아래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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