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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집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오랫동안 DJ로 일하면서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선택했는데 왜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라고 스스로를 이상하게 여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에어컨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직업의 의미, 처음부터 명확한 사람이 있을까요
이나모리 가즈오는 교세라를 창업한 일본의 대표적인 경영인입니다.
그가 처음 들어간 회사는 당장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적자 기업이었습니다. 특별한 재능도, 든든한 배경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훗날 60년 넘게 경영 현장에 남으며 세계적인 기업을 일궈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경영의 신'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변화의 시작점은 단순합니다. 일을 대하는 생각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기회가 찾아온 것도, 환경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직업의 의미(職業의 意味), 즉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을 때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추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DJ를 하던 시절을 돌아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됐습니다.
음악을 좋아해서 선택한 일이었고, 처음에는 그 자체가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감각을 잃어버렸을 때 흥미가 줄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일의 내용이 아니라 일을 대하는 방식이 바뀐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직업의 의미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걸까요, 아니면 찾아가는 걸까요?
제 경험상 이건 후자에 훨씬 가깝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은 꽤 오래된 조언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면서 보내는데,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한다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그 다음은 영원히 행복한가요?
저는 DJ를 하면서 그 질문의 답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제가 원해서 선택한 일이었고, 음악을 좋아했고, 사람들 앞에서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반복되는 감각이 찾아왔습니다.
일이 루틴화(Routinization), 즉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처리되는 상태가 되면서 처음의 설렘이 옅어졌습니다.
그렇다고 DJ가 싫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에 배운 것들, 음악을 듣는 방식, 사람을 읽는 감각,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능력 같은 것들은 지금도 생활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일이 저를 단련시키고 있었던 건데, 그 당시에는 그걸 잘 몰랐습니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말했던 도편수 이야기가 여기서 연결됩니다.
60년간 사찰만 지어온 장인은 1000년 된 나무를 쓴다면 그것이 이후로도 1000년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좋아서 시작했건, 어쩌다 시작했건, 그 일에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가 결국 그 사람의 내공을 만든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물론 이 말이 '싫어도 무조건 버텨라'는 뜻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보다 지금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먼저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가지는 비슷해 보이지만 결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하루 단위로 일을 바라보면 달라지는 것
이나모리 가즈오가 실천했다는 방식 중에서 제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느낀 부분이 있습니다.
일의 성과를 거창한 목표 단위가 아니라 철저히 하루 단위로 쪼갠다는 것입니다.
목표 설정(Goal Setting)이라는 개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목표를 크게 잡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목표가 너무 크면 오늘 해야 할 일이 막막해진다는 것입니다.
10년 뒤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이 일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흘려보내게 됩니다.
에어컨 청소를 시작하면서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작업을 마치고 깨끗해진 기기를 보면 그 결과가 눈에 분명히 보입니다.
오염 제거(汚染除去) 작업 전후의 차이가 선명하기 때문에, 오늘 내가 뭘 했는지 바로 확인됩니다.
그 작은 확인이 쌓이면서 일에 대한 감각이 달라졌습니다.
하루 단위로 일을 바라볼 때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오늘 반드시 끝낼 일 한 가지를 아침에 정한다. 여러 개가 아니라 딱 하나입니다.
- 그 하나를 마쳤을 때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그려둡니다.
- 하루가 끝날 때 오늘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짧게 확인합니다. 크지 않아도 됩니다.
이 방식은 미국심리학회(APA)의 목표 설정 연구에서도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단기 목표가 동기 유지에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와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거창한 변화보다 오늘 하루를 실제로 마무리하는 경험이 쌓여야 자기효능감(Self-Efficacy), 즉 '나는 이걸 해낼 수 있다'는 내면의 확신이 생깁니다.
직업 전환, 실패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DJ에서 에어컨 청소로 넘어온 저를 보고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도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전환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커리어 전환(Career Transi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직종에서 다른 직종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실패나 포기가 아니라 성장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두 개 이상의 커리어를 갖는 것이 오히려 각각의 영역에서 더 나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제 경우를 보면 DJ를 하면서 길러진 감각들, 공간을 읽고, 사람의 반응을 살피고, 그 자리에서 바로 판단하는 능력이 전혀 다른 업종에서도 작동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일이지만,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나 현장에서 집중하는 태도 같은 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보여도, 그게 사람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분명 이어집니다.
DJ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일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이 일에서 당신이 얻고 있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걸까요?
직업은 한 번 골라서 평생 지키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새로운 기회를 만나면서 계속 만들어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지금 일이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곧바로 결론을 낼 필요는 없고, 반대로 힘들다고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늘 내가 하는 일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한 번 살펴보는 것, 그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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